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21

디모데전서,
하나님의 집
사용 설명서

에베소에 남겨진 젊은 목회자에게
바울이 보낸 교회 생활 안내서

디모데전서 1–6장
여는 글

디모데전서를 펴면 첫인상이 좀 딱딱해요. 기도는 이렇게 하고, 감독과 집사는 이런 사람을 세우고, 과부는 이렇게 돌보고, 장로는 이렇게 대하라… 😄 교회 운영 규정집 같거든요. 그런데 바울은 이 편지를 쓴 이유를 이렇게 밝혀요.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3:15). 규칙을 모아 둔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시는 집에서 식구로 사는 법을 알려 주는 안내서예요.

그 안내서 곳곳에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해가 갈수록 자기를 더 낮춰 부른 바울, 체육관의 도시에서 말한 "경건의 운동", 아데미 신전의 돌기둥과 교회라는 기둥, "크다!"라고 외치던 도시에 울린 또 다른 찬송, 엄숙한 장로 규칙 사이에 끼어든 위장약 처방까지요.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 가운데 한 분이 서 계세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예요.

1부

디모데전서는 어떤 책일까?

에베소에 남은 젊은 목회자에게 보낸 첫 편지

바울은 마게도냐로 떠나면서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 두었어요(1:3). 에베소 교회에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디모데는 루스드라 출신으로,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였고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어요(행 16:1).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부터 함께한 동역자이자 "믿음 안에서 참 아들"(1:2)이었죠. 그런데 아직 젊었고(4:12), 몸도 자주 아팠어요(5:23). 전통적으로는 바울이 로마의 첫 번째 감옥살이에서 풀려난 뒤, 주후 62–64년 무렵에 쓴 편지로 봐요.

디모데라는 이름"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헬라어 "공경"(티메)과 "하나님"(데오스)을 합친 이름이에요. 😄 이름대로 사는 것이 이 편지 전체의 숙제예요.
"목회서신"이라는 이름디모데전서·디모데후서·디도서를 묶어 부르는 말이에요. 바울이 붙인 이름이 아니라, 18세기 독일 학자 파울 안톤이 강의에서 이렇게 부르면서 널리 퍼졌어요.

※ 근대 이후 목회서신의 문체와 단어가 다른 바울 서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저자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어요. 편지 스스로 바울이 썼다고 밝히고, 초대교회도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바울이 첫 감옥살이에서 풀려나 다시 전도했다는 것은 사도행전 이후의 일이라 초대교회 기록에 기대는 부분이에요.

디모데전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미쁘다 이 말이여"
"믿을 만한 말"이라는 표현이 목회서신에만 다섯 번 나와요. 그중 세 번이 디모데전서예요(1:15, 3:1, 4:9).
2
기도가 첫째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2:1). 임금들을 위해서도요. 그때 황제는 네로였어요.
3
직분자의 자격
감독과 집사의 자격(3장)에는 능력보다 성품과 가정이 먼저 나와요.
4
경건
"경건"이라는 단어가 신약 전체에 열다섯 번 나오는데, 그중 여덟 번이 디모데전서에 있어요.
5
돈 이야기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6:17). 바울은 돈 이야기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뤄요.

디모데전서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3:15).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동호회도 아니에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사시는 집이에요. 그리고 바울은 그 집의 주인이 누구신지 바로 이어서 노래해요.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3:16).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해마다 낮아진 바울부터 빌라도 앞의 선한 증언까지

1

해가 갈수록
더 낮아진 바울의 자기소개

디모데전서 1:12-17 · 고린도전서 15:9 · 에베소서 3:8
고린도전서"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15:9) · 주후 55년 무렵
에베소서"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3:8) · 60년 무렵
디모데전서"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1:15) · 63년 무렵

바울이 자기를 소개하는 말을 편지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재밌는 흐름이 보여요. 처음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였어요. 몇 년 뒤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사람이 돼요. 😄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다니, 바울은 문법까지 새로 만들었어요. 헬라어로 "가장 작은"이라는 최상급에 비교급 어미를 하나 더 붙였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엔 "죄인 중에 괴수"예요.

시간이 갈수록 바울은 교회에서 더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런데 자기를 보는 눈은 반대로 갔어요.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자기 죄가 더 크게 보였던 거예요. 게다가 1:15의 "괴수니라"는 현재형이에요. "괴수였다"가 아니라 "지금도 괴수다"라고 말해요.

그런데 이 고백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아요. 바로 다음 절이 이래요.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16). 가장 큰 죄인을 구원하셨다면 누구든 구원하실 수 있다는 본보기가 바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고백 끝에 찬송을 터뜨려요(1:17).

※ 세 편지를 쓴 연대는 대략적인 추정이에요.

돌아보기
주님께 가까이 갈수록 내 죄의 크기와, 그보다 훨씬 더 큰 예수님의 은혜를 함께 봅니다.
2

체육관의 도시에서
"경건의 운동"을 말하다

디모데전서 4:6-10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4:7). 여기 "연단하라"는 귐나조라는 단어예요. 영어 "짐(gym)", "체육관(gymnasium)"이 이 단어에서 나왔어요. 원래 뿌리는 "벗은"이라는 뜻이에요. 그리스 선수들은 옷을 다 벗고 운동했거든요. 😄 그러니까 바울의 말을 요즘 말로 하면 "경건 헬스장에 등록해라"예요.

에베소는 이 말이 딱 와닿는 도시였어요. 큰 경기장과 체육관이 있었고, 사람들은 몸을 가꾸는 데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어요. 바울은 그걸 무시하지 않아요.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4:8). 운동은 좋은 거예요. 다만 그 유익은 이생에서 끝나요.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4:8).

운동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듯 경건도 마찬가지예요. 매일 조금씩, 땀 흘리며 반복하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경건은 내 힘으로 키우는 근육이 아니에요. 바로 앞에서 디모데가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4:6)고 했듯이, 말씀을 먹고 소화하면서 자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훈련의 목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에요(4:10).

돌아보기
몸을 돌보는 것보다 더 꾸준히, 날마다 말씀 앞에서 경건을 훈련합니다.
3

아데미 신전의 돌기둥,
살아 계신 하나님의 기둥

디모데전서 3:14-15 · 사도행전 19:23-41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
높이 약 18미터의 돌기둥 127개로 세운 여신의 집
VS
디모데전서 3:15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

디모데가 있던 에베소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가 있었어요.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전이에요. 로마의 학자 대(大) 플리니우스는 이 신전에 높이 60피트(약 18미터)짜리 기둥이 127개 서 있었다고 기록했어요. 에베소 사람들의 자랑이었죠.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행 19:27) 여신의 위엄이 떨어진다며 소동을 일으킨 것도 이 신전 때문이었어요.

그런 도시에서 바울은 이렇게 써요.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3:15). 에베소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는 초라했어요. 신전도 없고 기둥도 없고, 가정집에 모이는 작은 무리였죠. 😄 그런데 바울은 그 작은 무리가 진짜 기둥이라고 해요. 돌이 아니라 사람으로 세운 기둥, 우상이 아니라 진리를 떠받치는 기둥이요.

오늘날 아데미 신전 터에는 흩어진 돌 조각을 모아 다시 세운 기둥 하나만 외롭게 서 있어요. 그런데 에베소에서 자라던 그 작은 교회는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온 세상에 서 있어요. 사람이 쌓은 집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 사시는 집이기 때문이에요.

※ 바울이 아데미 신전의 기둥을 떠올리며 "기둥"이라는 말을 썼다는 것은 추정이에요. 다만 에베소에서 이 편지를 들은 사람들에게 신전 기둥이 먼저 떠올랐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어요.

돌아보기
작고 초라해 보여도 교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임을 기억하고, 그 진리를 떠받치는 기둥의 한 부분으로 섭니다.
4

"크다 아데미여" 외치던
도시에 울린 "크도다"

디모데전서 3:16 · 사도행전 19:34

에베소 사람들이 연극장에 모여 두 시간 동안 외친 구호가 있어요.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행 19:34). 그 소리가 온 도시를 흔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디모데전서 3:16이 똑같은 말로 시작해요.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리고 여섯 줄의 노래가 이어져요.

1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2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3천사들에게 보이시고
4만국에서 전파되시고
5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6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이 여섯 줄은 운율이 딱딱 맞아요. 헬라어로 여섯 줄 모두 동사로 시작하고, 그 동사들이 모두 같은 소리로 끝나요. 그래서 많은 학자가 이것을 초대교회가 함께 부르던 찬송의 한 구절로 봐요. 😄 교회의 첫 찬양 가사가 성경 안에 남아 있는 셈이에요. 내용도 놀라워요. 하늘에서 땅으로 오시고(육신으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기까지(영광 가운데), 예수님의 이야기 전체가 여섯 줄에 담겨 있어요.

에베소 사람들은 사람이 만든 여신의 이름을 외쳤어요. 교회는 육신으로 오셔서 죽고 살아나 올라가신 분을 노래했어요. 두 개의 "크다"가 한 도시에서 부딪친 거예요. 경건의 비밀은 어떤 교리나 규칙이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예요.

※ 3:16이 초대교회 찬송이라는 것은 문체에 근거한 학자들의 추정이에요. 바울이 "크다 아데미여"를 의식하고 썼다는 것도 추정이에요. 참고로 후대 사본 중에는 "그는" 대신 "하나님은"으로 읽는 것도 있지만(흠정역이 이 본문을 따라요), 오래된 사본들은 대부분 "그는"으로 읽어요.

돌아보기
세상이 크다고 외치는 것들 앞에서,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 가장 크신 분임을 찬양합니다.
5

엄숙한 장로 규칙 사이에
끼어든 위장약 처방

디모데전서 5:17-25 · 4:12 · 디모데후서 4:20

5장 후반부는 꽤 엄숙해요. 장로를 어떻게 존경하고, 잘못한 장로는 어떻게 꾸짖고, 누구를 세울지 이야기하다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5:21)까지 나와요. 그러다 갑자기 이 구절이 튀어나와요.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5:23). 😄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장로 이야기로 돌아가요(5:24).

이 한 줄에서 디모데의 모습이 보여요. 젊고(4:12), 위장이 약하고, 자주 아팠어요. 그리고 물만 마실 정도로 자기를 엄격하게 다스리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대 도시의 물은 깨끗하지 않을 때가 많아서, 물에 포도주를 섞어 마시는 게 흔했어요. 바울은 "너무 자기를 몰아붙이지 말고 몸도 좀 챙기라"고 말하는 거예요.

재밌는 건 바울이 "기도해 줄 테니 나으라"고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바울의 손수건만 닿아도 병이 나았다는 바로 그 에베소에서요(행 19:11-12). 바울은 동역자 드로비모도 병들어 밀레도에 두고 왔다고 해요(딤후 4:20). 하나님은 기적으로도 고치시지만, 평범한 돌봄과 약으로도 돌보세요. 엄한 명령 한가운데서 아들 같은 동역자의 배탈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성경에 그대로 남았어요.

※ 디모데가 절제하려는 이유로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는 것은 본문에서 짐작한 추정이에요.

돌아보기
기적만이 아니라 평범한 돌봄과 약을 통해서도 나를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합니다.
6

경건을 돈벌이로 보는 사람에게
"경건은 큰 이익"이라 답하다

디모데전서 6:5-10 · 17 · 욥기 1:21
거짓 교사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6:5)
VS
바울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6:6)

에베소에는 신앙을 돈벌이로 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바울은 그들을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6:5)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바울은 그들이 쓰던 단어를 그대로 가져와서 뒤집어요.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6:6). 😄 "그래, 경건은 이익 맞아. 그런데 네가 생각하는 그 이익이 아니야."

그럼 무엇이 큰 이익일까요? 바울은 욥의 고백을 떠올리게 하는 말로 답해요.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6:7). 욥이 모든 것을 잃고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욥 1:21)고 한 것과 같은 고백이에요.

그리고 유명한 말이 나와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6:10).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함이 문제예요. 바울은 부자들에게 가진 걸 다 버리라고 하지 않아요. 대신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해요(6:17). 가장 큰 이익은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시는 그분을 가진 거예요.

돌아보기
채워지지 않는 욕심 대신,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는 마음을 구합니다.
7

바울 편지에 딱 한 번 나오는
본디오 빌라도

디모데전서 6:11-16

편지 끝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엄숙하게 불러 세워요.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6:13). 바울의 열세 편지 가운데 빌라도의 이름이 나오는 곳은 여기 한 곳뿐이에요.

왜 굳이 빌라도의 이름을 적었을까요? 예수님의 이야기는 신화가 아니라는 거예요. 에베소 사람들이 믿던 여신 이야기는 언제 어디서 있었던 일인지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예수님은 로마 총독 빌라도가 유대를 다스리던 그때, 그 법정에 실제로 서셨어요. 그래서 교회는 지금도 사도신경으로 고백해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 빌라도는 자기 이름이 이천 년 동안 온 세상 교회에서 불릴 줄 꿈에도 몰랐을 거예요.

한 가지가 더 있어요. 6:12에서 디모데가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라고 하고, 6:13에서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신" 분이라고 해요. 헬라어로 똑같은 말이에요. 디모데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이 먼저 하신 고백을 따라 한 것이었어요. 예수님이 먼저 목숨을 걸고 증언하셨기에, 우리도 세상 앞에서 그분을 고백할 수 있어요.

돌아보기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하신 선한 증언을 기억하며, 오늘 내가 선 자리에서 그분을 부끄럼 없이 고백합니다.
맺는 글
교회는 죄인 중의 괴수를 구원하신
예수님이 사시는 집이에요

디모데전서는 교회 생활 안내서예요. 기도, 직분, 예배, 돈,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해요. 그런데 그 모든 규칙의 한가운데에 찬송이 있어요. 육신으로 오시고, 영광 가운데 올라가신 예수님을 노래하는 찬송이요. 교회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교회의 주인이 누구신지에서 나와요.

바울은 자기를 죄인 중에 괴수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그런 사람도 구원하신 예수님을 보여 주는 본보기가 되었어요. 우리도 같아요. 하나님의 집에 들어올 자격이 있어서 들어온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 덕분에, 우리는 그 집의 식구가 되었어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15)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